지금은 미국 LA에 사시는 막내이모님이
큰언니가 화가이신 아버님과 결혼하여 어렵게 사시는걸 보고
6.25전쟁통엔 미군들 초상화 그려 돈을 긁어 모으다시피 하셨다는데
막내이모님 나 어릴때부터 그림그리지 말라고 극구 말리셨다
"환쟁이되면 배고프다"란 막내이모님 말씀에 어린 나는
"그림 않고 그림과 연관된 건축가를 할겁니다 "하고 절대로 가난한 화가는 안되기로 다짐했었는데
초등학교 가기전부터 시간만 나면 그림만 븥잡고 있었던 나
그아들이 그림그리는것을 기특하게 여기셨는지 그림 가르치시고
그시절 그림그리면 배고프단 것을 직접피부로 느껴셨던 아버지는 왜 아들에게 그림전수시켰는지
아버지 쫓아다니며 도급제 시다바리?
아버지가 사주시는 자장면과 야끼만두에 속아 그림바탕칠이며 붓빠는일 도맡아 하고
아버지 그림의 숭배자가 됐던 나
아버지 그림이 우리나라에서 최고인줄 알았었고
일제때 여류화가 나혜석?과 미술전시회도 했다 하셨고
스크랩한 崔炳鶴君 個人展 팜플렛도 보여주시고
학교에선 화가의 아들이라고 불렸던 나
주변사람들이 "넌 아버지 닮아 천재다" 에 속아 그림만이 나의 유일한 빛이었는데
머리가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할쯔음
아버지와 시도때도없이 그림에 대한 나의 생각과 아버지 그림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충돌
아버지는 아들의 그런악평도 화내는일 없이 다받아 주시고
아버지 사랑에 버릇없이 자랐던 나
그림에 대한 말은 삼가했어야 했는데 지금이야 후회막급
화가라고 불리셨던 아버지
어떤그림을 그리셨는 그어린시절 잘은 모르지만 폼생폼사이셨고
극장간판에서 미군초상화까지 그리고 탱화며 서예
전쟁후 물자가 부족한 시절 캔버스없어 미군군복이나 텐트천으로 캔버스 만들어 그리고
아마 박수근 선생도 똑같은 상황이었지않나 싶다
미군속에 부탁하여 물감과 붓을 구입하고 고마움으로 그림한점 증정하는
상업화에 물들어 나까지 물들여 주셔셔
그림을 때려치우기까지 한 나
그런 아버지를 부정까지도 한 나
아버지의 유작 유화작품이라도 찾으려 예전 작은아버님 거실에 걸렸던 그림 수소문 했으나 찾을길은 없고
책장정리하다 한편에 꽂혀있던 낡은 프레젠테이션용 앨범을 찾아내 아버지의 그림채취를 다시금 느껴본다
아들이 어깨넘어 그림을 배워도 아님 흉내만 내도 나같으면 다그칠텐데
왜 그때 그대로 두워서 어렵고 힘들다는 환쟁이 길로 인도하셨는지...
아직도 모를일이다
중국사람도 인정한 아버지 붓글씨 덕분에 야끼만두와 찐만두는 원없이 먹었다.주문한 중국인이 중국집도 했으니
부평소방서옆에서 금성극장옆에 사는집 중간에 위치 한 기억
말년까지도 붓을 놓지않으시고
그아버지 그림을 못마땅해 한 나
돌아가신 세월이 몇해가 흘렀고...이제야 마음의 용서를 구함니다...아버지
'작가 최무성의 작품 > 그림의 반란' 카테고리의 다른 글
LA에서 오신 이모님,미국발 고려장 (0) | 2010.03.09 |
---|---|
[스크랩] 현대사생회 회원전 2009 (0) | 2009.12.13 |
이산가족 만남보다도 길어졌던 친구들과의 만남 (0) | 2009.11.14 |
가구목수가 되다 (0) | 2009.11.08 |
10.26 그끝나지 않은 이야기 (0) | 2009.11.07 |